예배모임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

처치플랜팅

예배모임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
예배와 관련하여 시간은 깊은 관련이 있을까? 질문이 뭔가를 제한하는 것 같아,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듣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대답은 ‘영향? 물론이다’이다.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기대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토요일에 모이는 예배와 주일(일요일)에 모이는 예배모임은 하루 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분명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 습관에 따른 것이다’라고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고난주간의 성찬식은 그 어느 때와 달리 우리의 마음가짐부터 다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늘 감사의 노래와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감사로 충만했던 추수감사절을 잊지 못한다. 기쁨의 소식을 나누던 성탄절 예배는 또 어떤가! 예배에 있어서 시간이 끼치는 영향을 우린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예배와 관련하여 예배인도자나 설교자의 외모, 태도, 억양 등은 관련이 있을까? 이 질문에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을지 모르지만, 이 역시 회중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예배인도자의 외모나 설교자의 태도, 억양 등이 주는 것이 중립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긍정적일 수도 있고 또 부정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설교자의 음성은 그 내용과 별개로 회중에 영향을 끼친다. 표준어와 사투리,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 여성과 남성의 소리 등이 각기 주는 정서적 감동은 충분히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무엇이 적당하냐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향을 준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사실 외모, 태도, 억양 이 모두가 하나의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배와 관련하여 공간이란 부분의 관련성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젠 ‘어디서든’이라며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어떤 공간에서 예배하느냐에 따라서 회중은 예배에서 기대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지하 동굴에서, 카페에서, 가정집에서 예배할 때 예배에서 기대하는 것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초대 교회를 보면 한 가정집을 포함해 다양한 장소에서 모였던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공동체가 한 장소에 모였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다루고 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예수님이 머물던 장소들의 명칭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예배는 동작이요. 행위이기 때문에 공간이 필요하고 그 만큼 중요할 수 있다.

예배 장소 내의 상징과 조명 등은 예배와 관련이 있을까? 물론 강대상 위에 십자가가 달려 있는 예배당과 스크린이 대치되어 달려 있는 예배당에서 회중은 다른 것을 생각하고 또 다른 것을 느낀다. 아주 밝은 주광색(대낮의 빛과 같은 색) 조명에서의 예배와 몇 개의 초로 밝혀진 예배당에서 예배에서 사람들의 마음과 자세가 같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신학적 미학」(Richard Viladesau 저)이란 책에 보면 ‘예배 장소의 상징물이나 이미지 그리고 분위기는 예배자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되며, 예배 공간 내에 위치한 적절한 상징은 회중이 하나님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사유와 상상력 속에서 하나님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고픈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배사역이란 무엇인가? 음악사역만이 아니다. 나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느낌과 감동을 바르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배사역자는 하나님을 만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하나님과의 만남에 부정적 영향을 주거나 제한하는 것들을 최소화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게 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은 결코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예배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 중 일부를 적어 보았다. 이에 최소 10배 많은 요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에는 우리의 예배 생활에 방해하는 근본적인 요소도 있다. 문제는 이런 요소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앞에 고민하고 있는 교회가 많아 보이지 않고, 그것을 해소하거나 생산적으로 바꾸기 위해 교회적 노력 역시 부족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 WE 미디어센터 www.wemedia.kr